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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부산콘서트홀 콘서트 오페라 ‘오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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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6. 10. 1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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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오케스트라와 성악적 역량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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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콘서트홀 콘서트 오페라 '오텔로'. /클래식부산
1871년 '아이다(Aida)'를 대성공시킨 베르디는 "더 이상 오페라를 쓰지 않고 농장에서 조용히 노년을 보내겠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그로부터 16년 후, 만 73세의 그는 오페라 '오텔로(Otello)'를 작곡해 1887년 밀라노 라 스칼라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다. 당시 유럽 오페라계를 휩쓸던 바그너의 혁신적인 악극 스타일에 대한 압박감, 평생을 경외해 온 셰익스피어 원작이라는 무게, 스스로 과거의 작곡가가 되었다는 시대적 소외감에 시달리던 베르디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독자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의 경지를 선보였다.

열렬한 바그너 주의자이자 저명한 예술 비평가 엔리코 판차키(Enrico Panzacchi)가 '오텔로' 초연 다음날인 1887년 2월 6일,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에 '어쩌면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공연을 보고 우리는 지금 라 스칼라를 나선다'는 극찬을 남겼을 정도로 노장의 귀환은 화려했다.

지난 10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열린 콘서트 오페라 '오텔로'는 베르디와 동년배인 관록의 두 대가가 지배한 무대였다. 그때의 베르디에게 '오텔로'가 눈부신 복귀였다면, 올해 73세인 지휘자 정명훈과 72세의 테너 그레고리 쿤데에게 이날 '오텔로'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준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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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콘서트홀 콘서트 오페라 '오텔로'. /클래식부산
정명훈이 이끄는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APO)는 지휘자의 다이내믹한 조율과 단원 개개인의 탁월한 기량이 어우러져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 자체만으로 이미 하나의 오페라를 완성했다. 시작과 함께 터져 나온 금관과 타악기의 강렬한 울림은 폭풍우에 휩싸인 바다의 격랑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압도적인 에너지와 타격음으로 1막을 열었다. 그리고 1막 끝부분 입맞춤의 동기에서 현악 파트가 끌어올린 서정적 밀도는 4막 데스데모나의 죽음 직전 섬찟한 느낌으로 변해 재현됐다.

APO는 감정과 상황의 극적인 대비, 인물의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치명적 감정 등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극적인 긴장이 넘치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이처럼 압도적인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 자리했음에도 성악가의 호흡이나 존재감을 전혀 가리지 않는 조화로운 오페라가 완성된 것은 역시 지휘자의 노련함과 음악적 깊이에 의지한 바가 크다.

이날 정명훈 지휘자만큼 이목을 끌었던 것은 오텔로 역할의 테너 그레고리 쿤데였다. 이제는 노년으로 접어들었다 볼 수 있는 쿤데가 맹렬히 포효하고 갈등하는 청년 장군을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했다. 오텔로의 상징적인 첫 외침이라 할 수 있는 '환호하라! (Esultate!)'에서는 그다지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러나 안정된 호흡을 바탕으로 견고한 발성을 유지하면서 뒤로 갈수록 단단한 기량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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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콘서트홀 콘서트 오페라 '오텔로'. /클래식부산
특히 풍부한 공명을 지닌 고음은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고도 공연장 구석구석까지 선명하게 전달됐다. 상대적으로 저음역이나 피아니시모에서는 힘이 부쳤지만, 고음에서만은 몸 전체를 악기로 사용하는 벨칸토 가창법의 대가다운 저력을 드러냈다. 외양상, 청년 영웅으로 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었으나, 젊은 소리 빛깔과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연기 덕분에 극적 몰입이 어렵지는 않았다.

바리톤 젤리코 루치치의 오페라를 본 것은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 '토스카'의 스카르피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였는데, '오텔로'의 이아고가 그에게는 가장 어울리는 배역이라는 생각을 했다. 루치치는 냉정하고 무자비하게 이아고를 그려냈다. 그는 섣불리 흥분하거나 과장된 움직임 없이 차분하고 위압적인 음색으로 주인공들을 비극으로 몰아넣었다. 쿤데의 섬세한 음색과 루치치의 절제된 표현은 좋은 조화를 이뤘다.

공연 전부터 두 외국인 남성 성악가들이 화제를 모았지만, 이날 가장 빛난 것은 데스데모나를 노래한 소프라노 손지혜다. 손지혜는 풍부한 성량과 호소력 있는 연기로 1막부터 데스데모나의 헌신적인 사랑을 잘 표현했는데, 4막의 '버들의 노래'에서는 맑고 정제된 음색과 깊이 있는 감정 표현으로 여주인공의 애절한 심정을 그려낸 절창을 들려주며 많은 감동을 안겼다. 이날 손지혜는 셰익스피어와 베르디 모두가 그려내고자 했던 데스데모나의 순결한 비극성을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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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콘서트홀 콘서트 오페라 '오텔로'. /클래식부산
층고가 높은 빈야드형 부산콘서트홀의 공간적 특성을 활용한 표현진의 연출은 계단과 높낮이가 다른 무대를 통해 입체감을 부여하며 콘서트 오페라의 제약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콘서트 오페라의 한계를 잊게 한 것은 음악 자체의 높은 완성도와 충만함이었다. 다만 일부 장면에서 조명이 주·조역의 위치를 정확히 따라가지 못해 극의 집중도를 떨어뜨린 점은 아쉬웠다.

정명훈은 오는 12월 7일 밀라노 라 스칼라극장의 시즌 개막작으로도 '오텔로'를 지휘한다. 라 스칼라 최초의 아시아인 음악감독으로 맞는 첫 시즌이라는 점에서 그의 행보에 세계 음악계의 관심이 쏠리는 중이다. 이번 부산 공연에서도 베르디 후기 오페라에 대한 정명훈의 깊은 이해와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번 '오텔로'는 부산 무대에서 수준 높은 오페라 공연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을 위해 추진되던 라 스칼라 초청공연은 취소되었다. 정식 개관도 2028년으로 미뤄졌지만,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로서 국제적 교류와 지역 예술 역량의 성장은 결코 대립하는 과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일회성 초청공연을 넘어 세계적 수준의 예술적 경험을 지역의 제작 역량과 문화적 자산으로 연결하는 일일 것이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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