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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사업 4곳 중 1곳 공사비 검증 ‘패싱’…제도 있으나 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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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준 기자

승인 : 2026. 10. 1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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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정비사업장 568곳 중 138곳 검증 외면
마천4구역 공사비 협상서 최초계약比 74%↑
위반해도 제재 없어…국회 과태료 도입 추진
공사비 검증 제도 현황
전국 재개발·재건축 사업장 네 곳 중 한 곳이 법정 공사비 검증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비 검증으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시공사와 갈등이 커질 것을 우려해 절차를 생략한 사업장도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과도한 공사비 인상을 막고 조합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지만,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별도 제재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자잿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시공사와 조합 간 갈등이 잇따르고 있다. 공사비 협상이 길어지면서 착공이 늦어지거나 조합 내홍으로 사업이 중단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정부가 검증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1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시공사를 선정한 전국 정비사업장 568곳 중 138곳(24.3%)이 공사비 검증 대상인데도 관련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 국토부는 이 가운데 16곳을 선정해 오는 19일부터 특별현장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공사비 검증은 시공사가 요구한 증액분이 적정한지 전문기관이 확인하는 제도다. 공사비가 크게 오르면 조합 사업비 부담이 늘고, 이는 조합원 추가 분담금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검증을 통해 증액 근거와 세부 내역을 확인하면 조합이 시공사와 협상할 때 필요한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사업시행계획인가 전에 시공사를 선정한 조합은 공사비가 최초 계약보다 10% 이상 늘면 검증을 요청해야 한다. 인가 이후 시공사를 선정했다면 증액률이 5% 이상일 때 검증 대상이 된다.

문제는 검증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별도 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법에서 검증을 요청하도록 의무화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부과할 과태료나 벌칙은 마련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령에는 검증을 요청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별도의 페널티는 아직 없다"며 "우선 미이행 사업장에 검증 절차를 이행하도록 안내하고, 점검 결과에 따라 행정지도 등을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증을 생략한 배경은 사업장마다 다를 수 있다. 일부 조합은 검증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 절차를 누락했을 가능성이 있다. 시공사와 분쟁이 길어지면 착공이나 입주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검증을 생략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토부는 특별점검을 통해 구체적인 미이행 사유를 확인할 방침이다.

실제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에서는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송파구 잠실진주 재건축(잠실 래미안 아이파크)은 2018년 7458억원이던 공사비가 지난해 1조3818억원으로 늘었다. 시공사인 삼성물산·IPARK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과 조합 간 갈등 끝에 최초 계약보다 6360억원(85.3%) 증가한 금액으로 결정됐다.

인근 마천4구역 재개발(디에이치 클라우드)도 공사비 인상을 놓고 진통을 겪었다. 현대건설은 지난 4월 기존 3834억원이던 공사비를 6733억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조합과 현대건설은 이달 3.3㎡당 공사비를 899만원으로 조정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 이를 기준으로 추산한 총공사비는 약 6688억원으로, 최초 계약보다 2854억원(74.5%) 많은 수준이다. 다만 최종 계약금액은 추가 협의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디에이치 반포124)도 공사비가 크게 뛰었다. 조합은 2024년 현대건설로부터 기존 2조6363억원이던 공사비를 4조776억원으로 올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협상 끝에 3조8958억원으로 조정한 뒤 조경·마감재 변경 비용 1025억2000만원을 추가 반영했다. 최종 공사비는 3조9983억2000만원으로, 최초 계약보다 1조3620억2000만원(51.6%) 증가했다.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힐스테이트 메디알레) 역시 공사비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다. 현대건설은 2024년 1월 공사비 미지급 등을 이유로 공사를 중단하고 유치권 행사를 선언했다. 이후 서울시와 은평구 중재를 거쳐 지난해 4월 공사비를 기존 5800억원에서 8366억원으로 올리는 데 합의했다. 증액 규모는 2566억원(44.2%)이다.

이들 사업장은 공사비 증액과 갈등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다만 이번 국토부 조사에서 검증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138곳에 포함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공사비가 늘면 조합원 추가 분담금이 커질 수 있고, 협상이 장기화하면 사업 일정도 늦어진다. 공사비 검증이 실질적인 견제 장치로 작동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검증 의무를 부과하는 데 그치고 이를 강제할 수단을 마련하지 않으면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와 국회도 제도 보완에 나섰다. 국토부는 특별점검을 통해 공사비 산정과 증액 과정의 적정성, 관련 법령 준수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도 담당 부서에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사비 검증 요청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검증 의무만 있고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는 현행 제도를 보완하려는 취지다.
전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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